[온기운 에너지정책합리화 교수협 공동대표 ]

▲ 온기운 에너지정책합리화 교수협 공동대표
▲ 온기운 에너지정책합리화 교수협 공동대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증폭되고 있는 국제 에너지 정세 불안정성은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에너지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2020년 4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한때 배럴당 37달러대까지 폭락했던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가격은 이달초 110달러를 돌파했다.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국제유가의 수직상승에 따라 천연가스 가격도 천정 부지로 치솟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럽시장의 천연가스 가격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TTF(Title Transfer Facility) 선물가격은 지난 2일 장중 한때 약 60% 급등해 MWh당 194유로(약 26만원)을 돌파했다. 사상 최고치다.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탈(脫)탄소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화석연료 가격이 이처럼 급등하리라고는 거의 모든 전망기관들이 예측을 못했다. 그만큼 국제적인 충격도 크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이 이달 초 황급히 6000만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풀기로 했지만 이는 전세계 하루 원유 소비량보다 적은 것으로 ‘언 발에 오줌 눗기’ 식이다. 여기에 원유 공급의 숨통을 실질적으로 틔워줄 ‘OPEC+’가 추가 증산 결정을 하지 않음으로써 유가가 고삐 풀린 모습으로 오르고 있다. 지난 3일 OPEC+가 장관급 회담 이후 성명을 통해 “오는 4월에도 하루 40만배럴 증산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 시장을 실망시켰다. 

문제는 러시아가 서방 세계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 조치 강화에 맞서 대유럽 원유 및 가스 수출을 중단할 경우 최악의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현재 유럽연합(EU)에 대해 하루 약 240만 배렬의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 EU가 극히 중요한 원유수출 대상국이다. EU에 있어서도 러시아는 원유공급의 약 30%를 차지하는 중요한 공급원이다. 

유럽의 대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는 약 40%로 원유 의존도보다 높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에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를 공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자국을 통과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관세(통과료)를 부과해 이를 국가 재정 수입원으로 삼고 있는 한편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국내 산업 생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만일 러시아가 유럽에 대해 원유나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일이라도 발생한다면 유럽은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러시아도 대유럽 에너지 수출 중단은 외화공급원의 상실과 경제파국을 초래할 수 있는만큼 아직은 대유럽 보복 카드로 노골화하고 있지 않으나 ‘푸틴’의 예측불허인 행동을 보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2008년 12월 31일 푸틴은 유럽용 천연가스를 우크라이나가 빼돌리고 있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천연가스 공급을 2주 이상 중단한바 있다. 당시 유럽이나 우크라이나의 가스 비축량이 충분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가스 재고량이 적어 상황이 다르다. 유럽은 현재 파이프라인을 통한 가스 수입 대신 LNG 조달을 늘리기 위해 미국, 카타르 등과의 협력이나 아시아 주요 LNG 수입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도 유럽에 대한 LNG 지원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최악의 사태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되지 못함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에너지안보 강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루 원유 소비량이 350만배럴을 넘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규모도 세계 3위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유럽발 원유 및 천연가스 가격 폭등세는 큰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당장 에너지 가격 폭등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증가로 생산이 위축돼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쳐지고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린 에너지 가격 상승이 경기위축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결국 ‘불경기 속의 인플레이션’, 즉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에너지 수입 금액 증가로 무역수지도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에너지안보 강화를 위해서는 원유와 천연가스 공급선을 다변화함과 동시에 계약기간을 적절히 혼합해 가격변동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특히 LNG의 경우 현물, 단기, 중기, 장기 등 계약기간이 다양한 만큼 국제에너지 정세에 따라 이들 기간을 안배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믹스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화석연료를 줄이고 청정에너지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현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할 때 가장 우려됐던 것 중의 하나가 에너지안보였다. 2017년 정부 출범 당시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안정돼 탈원전을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는지 모른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과정에서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스발전 가동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가스 수입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작금의 LNG가격 폭등이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연료비 급증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인상이 억제되면서 한전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차기 정부는 원전을 백안시하지 말고 이를 적극 이용해 예측치 못한  국제 화석연료 가격 폭등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 에너지수입의존도가 96%로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점에서 에너지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에너지플랫폼뉴스 송승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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