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산업을 책임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전 정부 에너지 정책에 대해 사과했다.

산업부 이창양 장관은 16일 열린 ‘제 1차 에너지정책 자문위원회’에서 ‘지난 정부에 발생한 일이지만 재생에너지를 담당하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장관이 언급한 ‘지난 정부 발생한 일’이란 국무조정실 부패예방추진단이 태양광을 포함해 전력산업기반기금 운영 실태를 점검한 결과 부실 집행 사례가 대거 적발된 것을 의미한다.

부패예방추진단은 지난 해 9월부터 1년 동안 전국 226개 지자체 중 12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 운영실태를 조사했는데 2,267건, 금액 기준 2,616억원에 달하는 위법‧부당 집행 행위가 적발됐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이 일부 지자체인 점을 감안하면 전국으로 확대될 경우 위법 행위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적발 유형도 공사 대금 등을 부풀린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대출액을 부당하게 높이거나 불법 시설물을 적법하게 위장시켜 기금을 부실 대출 받은 행위, 담합 등 죄질이 좋지 않았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전력 소비자가 부담하는 전기요금에 3.7%가 부과되는 준조세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이유로도 불법, 부당하게 집행되거나 사용되면 안된다.

국민 혈세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설령 ‘전 정권에 대한 보복 조사’라는 비난이 제기되더라도 전체 지자체에 대한 투명하고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고 그 결과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되는 대목은 이전 정권의 잘못이 단죄하는 과정에서 정책 추진 명분까지 부정되고 추진 동력이 상실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과제로 추진된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그렇다.

5년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하려는 정권의 무리한 욕심에 부실 투자가 남발됐고 새 정부 들어 국회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등 다양한 형태의 조사가 이뤄졌으며 수십조원에 달하는 혈세가 낭비된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후 해외자원개발정책이 올스톱됐다는 점이다.

바뀐 정권은 자원개발공기업인 석유공사의 해외자원개발사업 진출을 사실상 차단했고 성공불융자를 비롯해 다양한 정책지원자금을 아예 폐지하거나 크게 줄여 자원 확보 동력을 끊었다.

심지어 자원개발 책임 부처인 산업부나 석유공사는 물론이고 민간 기업에서도 자원개발사업을 논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될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유와 가스 에너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자원 최빈국임에도 과거 정부의 잘못을 파헤치는 데만 몰두했을 뿐 그 잘못을 바로 잡아 자원 개발 역량을 다시 세우려는 노력은 실종됐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전 정부의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 자금 부실 집행 사례를 언급하면서도 ‘원전, 재생, 수소에너지 등의 조화를 통해 실현 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지나친 우대, 소규모 태양광 편중, 계통 부담 등의 문제들을 감안해 이를 시정하는 새로운 재생에너지 정책 방향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단순히 대한민국 정권이나 정치권의 화두가 아니라는 점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민간 캠페인으로 시작된 RE100이 규범화되고 있고 EU를 중심으로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는 등 환경의 무역장벽화가 진행되고 있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 저감을 비롯해 궁극적으로 탄소중립을 약속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그린택소노미를 통해 녹색산업에 금융과 투자가 집중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비록 전 정권 시절의 일이기는 하지만 산업부 장관이 직접 나서 산업부의 과거 잘못을 사과하는 것은 분명 용기있는 일이고 높이 살 만 하다.

그렇다고 또 다른 잘못을 걱정해 국가 백년 대계인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위축시키면 안된다.

잘 되기만 하는 일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고 실패할 확률을 감수하지 않고 일이 잘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해외자원개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방향과 전략을 수정하는 대신 포기한 댓가는 치솟는 글로벌 에너지 물가와 수급 불안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정부의 책임만 묻고 재생에너지 정책을 위축시킨다면 다가오는 탄소중립 시대에서 청정 에너지 수급 위기는 물론이고 국가 무역 경쟁력이 크게 훼손되는 재앙으로 되돌아 올 것이 분명하다.

진정한 사과는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것이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 당국자들이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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