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유가 2011년, 유류세 인하 대신 알뜰주유소 런칭·유통 진출

정유사 생산 석유 절반 수출하는데 인센티브 주며 석유 수입 장려

관세·석유수입부과금 면제·환급, 국산 석유 보다 60원/ℓ 경쟁력

‘일물이가’ 가격 왜곡에 일본산 석유 수입 늘며 무역 역조 심화

알뜰주유소는 재산·소득세 감면, 저리 신용대출 등 특혜로 지원

정상적 시장 경쟁 외면, 정부 행정력 동원·주유소 기름값 인하 압박

[에너지플랫폼뉴스 정상필 기자]

기름값을 리터당 100원 내리겠다며 정부가 석유유통사업에 직접 진출하며 알뜰주유소를 런칭한 것이 2011년이다.

2011년, 주유소 휘발유 판매 가격은 리터당 1,900원을 훌쩍 넘길 정도로 높아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고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부는 알뜰주유소 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정부는 알뜰주유소가 시장에 진입해 경쟁을 촉진하면 기름값을 리터당 100원 내릴 수 있다며 선전했다.

하지만 시장 논리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 통계로 확인된다.

정부 위임을 받아 국내 석유 가격을 분석, 관리하는 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정유사 휘발유 평균 공급가격은 리터당 휘발유 1,809.80원, 석유 대리점 단계는 1,851.46원, 전국 주유소 평균 판매 가격은 1,929.26원을 기록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세후 정유사 출하 가격과 소비자 가격 차이는 휘발유 1리터 기준으로 119.46원에 불과했다.

경유도 마찬가지였는데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은 정유사 공급 가격 보다 리터당 115원이 높은 1,745.71원에 팔렸다.

정부 발표처럼 휘발유값 100원을 내리려면 석유 유통 과정의 세금을 면제하고 대리점, 주유소 등 석유 판매사업자 단계도 모두 없애 정유사가 직접 소비자와 거래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 유가 상승 외생 변수 대응책은 유통시장 압박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정부의 주유소 시장 진출이 시행된 2011년은 국제유가가 급등한 해였다.

이른 바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중동 지역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며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이 밀집한 중동 정세 불안 등이 유가 급등을 초래했고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고스란히 충격에 노출됐다.

실제로 2011년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1배럴에 105.98불, 휘발유와 경유 국제 가격은 각각 120.26불, 126.28불로 초고유가가 형성됐다.

정부가 법정 탄력세율 최대치까지 적용해 유류세를 인하할 정도로 유가 상승 압박이 심각했던 지난 해 평균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96.41불, 옥탄가 92 휘발유가 111.01불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도 2011년 가격이 오히려 더 높았다.

국제가격 급등이라는 외생변수에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던 정부는 지금 처럼 유류세 인하를 통한 물가 안정 조치 대신 석유유통시장에 직접 진출해 일반 주유소 경쟁을 촉진해 기름값을 낮추는 방식을 택했다.

한편으로는 석유 수입 활성화, 석유 선물 시장 개설 같은 정유사 압박 카드까지 내놓으며 시장 왜곡 논란을 부추겼다.

◇ 정부의 석유 수입 장려에 국감서 국부유출 지적도 제기돼

정부는 알뜰주유소의 조기 정착을 유도한다며 2년 동안 재산세 50%와 소득세 20% 감면 특혜를 제공했다.

알뜰주유소 전용 저리 신용대출과 함께 외상 거래 자금을 업체당 최대 5억원 까지 제공하는 자금 유동성을 지원했고 주유소 시설 개선 자금을 무상 지원하는 등 다양한 혜택으로 일반 주유소업계의 반발을 초래했다.

생산 제품 절반을 수출할 정도로 우리나라 정유사들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당시 정부는 오히려 석유 수입을 장려했고 다양한 인센티브까지 지원했다.

한국거래소(KRX)에 석유전자상거래를 개설하고 이곳을 통해 거래되는 수입 석유에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한 것.

한국거래소 석유전자상거래에서 유통된 수입 석유는 정유사 도입 원유에 적용되는 3%의 관세가 면제됐고 리터당 16원의 석유수입부과금도 전액 환급 조치했다.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

정유사 생산 경유에 섞여 공급되던 바이오디젤도 혼합 의무를 예외 적용됐다.

당시 바이오디젤 가격이 일반 경유 보다 비쌌는데 혼합 의무가 예외 적용되면서 수입 석유제품은 그만큼의 가격 경쟁력이 발생했다.

당시 이 조치로 한국거래소를 통해 유통된 석유는 오프라인에서 거래된 석유보다 리터당 60원 가깝게 낮은 가격에 형성되며 ‘일물이가(一物二價)’의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특히 한국산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일본이 오히려 우리나라에 한 해 1조원이 넘는 석유를 역수출하며 대일본 무역 역조 현상이 심화된다는 지적이 높았다.

2012년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조경태 의원(현 국민의힘)은 ‘정부가 알뜰주유소 유인책으로 수입 석유 장려 정책을 시행하면서 일본산 경유 도입이 급증하고 국부를 유출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 역조 까지 감수하며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해 수입된 석유는 현실적으로 알뜰주유소 전용으로 거래되며 또 다른 역차별이 발생됐다는 것이 시장의 분석이다.

정유사 상표 주유소들은 판매 석유제품 전량을 거래 정유사와 구매하는 계약을 맺고 있어 KRX 석유전자상거래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됐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 상표를 도입한 알뜰주유소들은 판매하는 석유제품 중 50% 이상만 석유공사를 통해 구매하면 되도록 계약을 맺어 나머지 물량은 정유사, 수입 석유를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어 낮아진 기름값 혜택이 고스란히 집중됐다.

◇ ‘정상적인 경쟁으로 기름값 인하 쉽지 않아’ 정부 인지했을 수도

이 때문에 정부가 알뜰주유소 등장으로 시중 기름값 100원을 낮추겠다고 홍보한 배경에는 정상적인 시장 경쟁 대신 각종 정책 지원으로 일반 주유소와 인위적으로 가격 격차를 벌려 놓고 시중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려 했다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석유유통협회 김상환 실장은 “정유사를 포함한 석유사업자 공급 가격을 의무 보고받고 있는 정부는 소비자 가격에서 석유 사업자들의 유통비용과 마진이 리터당 100원을 간신히 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상적인 수단으로 시중 기름값을 내릴 수 없는 구조를 인지한 정부가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고 석유 수입까지 장려하고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시중 기름값 인하를 압박한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알뜰주유소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며 정부 정책에 반발한 주유소협회는 ‘고유가로 소비자 불만이 높은데도 정부가 유류세는 내리지 않고 인위적인 시장 개입과 특혜로 일반 주유소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공식 반발했지만 무시됐고 현재 알뜰주유소 점유율은 전체 주유소의 12%에 근접할 정도로 성장하며 시장 장악력이 커지고 있다.

시장 경쟁 촉진을 명분으로 정부가 알뜰 상표로 주유소 시장에 진출하고 수입 석유에 각종 인센티브는 부여할 당시 주유소협회는 비상
시장 경쟁 촉진을 명분으로 정부가 알뜰 상표로 주유소 시장에 진출하고 수입 석유에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불공정 논란이 촉발됐던 당시, 주유소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공식 반발했다. 사진은 당시 주유소 업계를 중심으로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해 유가를 안정화시키라는 프래카드가 내걸렸던 모습.

한편 현재 석유 소비자 가격에서도 정유사와 주유소의 유통 비용과 마진은 리터당 100원 내외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시민단체인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3월 둘째 주 국내 휘발유 가격 구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용 중 석유제품 정제 원료에 해당되는 산유국 몫이 48.55%, 세금을 징수하는 국가 몫이 46.83%로 95.38%를 차지했고 나머지 4.26%가 정유사와 주유소 유통 비용 및 마진으로 분석됐다.

[자료  :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자료 :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실제 금액 기준으로는 리터 당 1,586.98원에 팔린 휘발유 가격 중 국제휘발유 가격을 포함한 산유국 비중이 770원, 국가 세금이 743원을 기록했고 주유소 유통비용과 마진은 67.98원, 정유사 유통비용은 5.25원으로 분석됐다.

감시단은 정유사 마진이 산유국 비중인 국제가격에 포함된 것으로 해석했는데 정유사와 주유소가 석유를 유통시키는데 투입되는 비용에 마진을 합해도 휘발유 1리터에 100원이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알뜰주유소를 등장시켜 경쟁을 촉진하며 리터당 100원의 석유 가격을 내리겠다던 정부 발표는 당시나 현재나 모두 실현 가능하지 않았던 셈이다.

저작권자 © 에너지플랫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